역사는 '외부의 적' 만들기가 얼마나 위험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는지 경고하고 있다. 제1차 세계대전 후 독일이 유대인을 희생양으로 삼아 홀로코스트라는 비극을 낳았고, 1923년 관동대지진 당시 일본이 조선인을 향한 유언비어로 무고한 학살을 자행했던 사례가 대표적이다.

 

최근 한국 정치권에서도 이와 유사한 '적 만들기' 현상이 심화되고 있다. 12·3 비상계엄과 탄핵 정국을 거치며 여권은 '중국 개입설'을 본격적으로 제기하기 시작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해 12월 12일 대국민담화에서 중국인의 미 항공모함 드론 촬영 사건과 국정원 불법 촬영 사건을 언급하며 안보 위협을 강조했다.

 

여당 의원들의 '중국 때리기'도 가속화됐다. 국민의힘 김민전 의원은 "탄핵소추 찬성이 중국인들의 소행"이라 주장했고, 유상범 의원은 "탄핵 찬성 집회에 중국인이 대거 참여"한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특히 극우 매체 스카이데일리가 보도한 '선거연수원 중국인 99명 체포설'은 윤 대통령 측 변호인단이 탄핵 심판 변론에서 인용하며 파장이 커졌다.

 

이 허위 보도는 선관위와 주한미군의 즉각적인 반박에도 불구하고, SNS와 온라인 커뮤니티를 통해 급속도로 확산됐다. 결국 지난달 19일 서울서부지법 폭동 사태에서는 집회 참가자들이 경찰을 '중국 공안'으로 몰아세우고, 일반 시민들에게까지 "중국인 검증"을 하는 등 극단적 행태로 이어졌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현상이 과거 '종북 프레임'을 대체하는 새로운 정치 도구로 활용되고 있다고 지적한다. 김희교 광운대 교수는 "중국은 북한과 달리 실질적 경제 보복이 가능한 국가"라며, "작년에만 460만 명의 중국인 관광객이 방문한 상황에서 극단적 혐중 정서는 심각한 국익 훼손을 초래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더욱 우려스러운 점은 이러한 혐중 정서가 양국 간 악순환을 야기할 수 있다는 것이다. 중국 내에서도 한국을 향한 반감이 고조되고 있어, 장기적으로 외교적, 경제적 갈등으로 비화될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