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들을 '인셀들의 먹잇감'으로 던진 학교… 동덕여대 시위에 쏟아진 혐오의 실체

하림은 과거 동덕여대에서 강의한 경험을 언급하며 "당시 했던 것이 고통과 연대하는 노래, 저항하는 예술에 대한 것이었다. 그때 학생들이 여성음악가로서 엔터테인먼트 시장에서 어떻게 소비되는지에 대한 고민도 함께 나눴다"고 말했다. 그는 "그러한 문제들은 지금도 사라지지 않고 있습니다. 더욱 교묘한 형태로 지속되고 여러분의 선배들을 괴롭히고 있다. 그 제자들이 떠올라서, 여러분들에게 응원을 보내기 위해서 이 자리에 나왔다"고 시위 참여 이유를 설명했다.
2024년 11월 11일 동덕여대생들의 본관 점거로 본격화된 '동덕여대 남녀공학 전환' 반대 시위는 언론을 통해 주로 '폭력적 시위'라는 프레임으로 조명되어 왔다. 전 동덕학원 이사장 동상과 학교 바닥에 한 래커칠, 취업박람회장 훼손 등이 언론 보도의 주요 내용이었다. 심지어 이준석 개혁신당 의원은 동덕여대 남녀공학 반대 시위를 "수법과 본질이 동일하다"며 '서울서부지법 폭동'에 빗대기도 했다.
이러한 언론 보도와 정치인들의 발언은 동덕여대 시위에 대한 사회적 조롱과 혐오를 부추겼다. 한국산업인력공단 이사장은 자신의 페이스북에 '서울 ㄷ여대'라고 언급하며 "블라인드 채용 제도라 할지라도 가능하다면 이 대학 출신은 걸러내고 싶다"는 발언을 했다. 한 유명 개그맨은 호감을 가진 여성이 '동덕여대를 다닌다'고 하자 "나가리네"라는 내용의 영상을 SNS에 올리기도 했다.
동덕여대 총학생회가 11월 20일 개최한 '남녀공학 전환 찬반' 학생총회에서는 1941명이 참석해 1939명이 '반대'에 투표했다. 이 기사에는 '많은 학생이 남녀공학 전환 문제를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다'는 사실보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같다", "공산당이냐"와 같은 악의적인 댓글이 넘쳐났다. 흥미로운 점은 서울대도 같은 시기에 비슷한 방식의 거수투표 총회를 열었지만, 그곳에는 '공산당 연상' 같은 댓글이 전혀 달리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여자대학을 졸업한 학생들은 이러한 여학생들의 단체행동에 대한 사회의 이중적 태도에 깊이 공감했다. 숙명여대를 졸업한 장태린씨는 "'군대에서 축구 한 이야기'만큼 '여대에서 투쟁한 이야기'도 정말 3박 4일 동안 할 수 있다. 여학생의 투쟁에 대해 한국 사회는 훨씬 많은 프레임을 갖고 있고 그걸 벗어나면 혐오와 조롱이 따라온다"고 말했다.
장씨는 자신의 경험을 들어 "숙명여대에서 총장직선제 쟁취를 위해 40~50일 천막농성도 했고, 망언한 숙명여대 출신 정치인을 규탄하는 투쟁 등도 강도 높게 했지만, 언론이 그다지 자세하게 취재하지 않았어요"라고 말했다. 그는 "딱 한 번, 숙명여대가 보도의 중심이 된 때가 있었는데 '트랜스젠더 학생 입학'에 대한 학생들의 환영과 반대 등으로 결국 입학이 좌절된 때였어요"라며, 당시에도 언론은 "여자대학의 정체성 문제에 대해 진지하게 보도하기보다 '선정적 보도, 경마식 보도'만 일삼았다"고 비판했다.
동덕여대 학생들의 투쟁이 '야만적 폭력'이라는 프레임을 씌운 것은 다름 아닌 학교 본부였다. 학생들이 본관을 점거한 지 하루 만인 2024년 11월 12일, 동덕여대는 김명애 총장 명의로 된 입장문을 발표했다. 이 입장문에서 학교 측은 "(학생들은) 본관 점거를 시작하며 직원을 감금하기도 하였습니다. 현재 대학 내 모든 강의실 건물을 무단 점거하여 학생들의 학습권을 침해하고 있으며, 온라인에 교직원의 신상정보를 공개하는 온라인 테러를 가하고 있습니다"라고 주장했다.
동덕여대재학생연합 소속 한 학생은 "학생들이 누구를 '감금'했다는 것인지 모르겠다. 11월 11일 처장단이 약속한 시간에 오지 않아 학생들이 항의의 의미로 몰려가자 교직원이 스스로 문을 걸어 잠근 것을 감금이라 말할 수 있을까"라며 "사실을 왜곡해 자극적인 단어를 포함해 학교가 입장문을 낸 것은 다분히 고의적이었다"고 반박했다.

더욱 충격적인 것은 동덕여대 본부가 신남성연대의 학교 앞 집회에는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서, 오히려 학생들의 시위 활동에 대해서는 법적 조치를 취했다는 점이다. 동덕여대 페미니즘 동아리 '사이렌'의 한 학생은 "학교에 신남성연대가 시위하지 못하도록 집회 금지 가처분신청을 해달라고 요구했지만, '학교에 신남성연대 지지자가 있을 수 있다'고 말하며 집회 금지 가처분신청을 하지 않았다"고 증언했다.
반면 학교 본부는 학생들의 본관 점거, 구호와 노래를 부르는 행위, 대자보를 붙이는 행위, 학과 잠바 시위 등에 대해서는 업무방해라며 금지 가처분 신청을 했다. 더 나아가 학교는 학생 21명을 지목해 재물손괴, 건조물 침입 혐의로 형사고발까지 했다. 동덕여대재학생연합 소속 재학생은 "실제로 래커칠을 한 학생이 아니라, 학교가 신상을 아는 총학생회 간부, 동덕여대 페미니즘 동아리 사이렌 회원들을 마구잡이로 지목해서 고발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권김현영 여성현실연구소장은 "이화여대에서 학생들이 등록금 투쟁을 하면서 설립자 김활란 동상에 래커칠을 했을 때 학교 본부는 재빨리 래커를 지웠지, 학교가 앞장서서 그 이미지를 퍼트리지는 않았다"며 "동덕여대 본부는 래커칠로 드러난 학생들의 정치적 의사 표현을 재물손괴와 폭력행위로 침소봉대하고, 고소고발을 남발하는 등 교육자의 역할을 내동댕이쳤다"고 비판했다.
이러한 학교 본부의 태도는 과거부터 이어져 온 불신의 역사와 맞닿아 있다. 2015년 동덕여대는 학생들과의 소통 없이 일방적으로 여성학 전공을 폐지했다. 2015년 동덕여대에 입학한 졸업생 신소현씨는 "2014년 입시 준비를 하면서 여성학 전공, 여성박물관, 여성학연구소 등 여성에 특화된 커리큘럼을 소개하는 공보물을 보고 동덕여대에 지원했는데, 정작 2015년에 여성학 전공이 폐지됐다는 통보를 듣게 됐다"고 말했다.
이런 상황에서 동덕여대의 '남녀공학 전환' 논란은 단순한 학교 체제 변경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여자대학의 존재 이유와 가치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이 제기되고 있지만, 학교 본부는 이를 "(교수들의) 아이디어 차원"이라고 일축하며 진지한 논의를 회피했다. 이현재 서울시립대 교수는 "학교 본부가 학생들을 지갑으로 여기고 아이디어 차원에서 남녀공학 전환을 논하는데 어떤 학생들이 이를 받아들일 수 있겠느냐"고 지적했다.
반면 학생들과 졸업생들은 여자대학의 필요성에 대해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고 있다. 이화여대 대학원생 조민형씨는 "가부장적 시선이 없는 해방 공간에서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인간'으로서의 여성을 확인하는 공간이 된다"며 "여성으로서의 소수자성이 다른 소수자들을 대상화하지 않고 확장하는 실험실로서의 공간이 된다"고 여자대학의 의미를 설명했다.
이화여대 재학생 류지원씨는 미국의 흑인 대학과 여자대학의 유사성을 언급하며 "여자대학이 많은 위험요소가 통제된 상태에서 더 풍부하게 행동하고 상상할 수 있는 공간이 되고, 그 상상력이 사회로 확장될 수 있는 출발점이 된다"고 말했다.
동덕여대 졸업생 소양은 "여대에 이미 존재하는 트랜스젠더퀴어들이 학내 자치 활동을 통해 여대 공간의 의미를 다시 쓰고 있다. '여대' 공간에 대한 더 많은 고민과 논의가 계속되게 하기 위해서라도 지금 '여자대학'은 존립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홍성수 숙명여대 교수는 "여대의 필요성을 페미니즘을 빼고서는 말할 수 없다. 여성끼리 다녀서 안전한 공간을 넘어서서 페미니즘 관점에서 공부하고 이해하고, 그를 토대로 사회를 변화시키는 공간이 되어야 한다"며 "동덕여대는 지금 한국 사회에서 왜 여자대학이 필요하고, 그 여자대학은 어떤 여자대학이어야 하는지를 논의하는 중요한 변곡점이 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동덕여대 투쟁은 단순히 한 학교의 문제를 넘어 한국 사회에서 여성의 목소리와 공간이 어떻게 인식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중요한 사례가 되고 있다. 여학생들의 정당한 요구와 투쟁이 '폭력'과 '테러'로 왜곡되는 과정에서, 우리 사회의 젠더 감수성과 민주주의의 현주소를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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